힘이 장사였으며 양반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양주의 백정 출신 의적 임꺽정은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실존 인물로 소설에도 등장하는 조선시대 최대의 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정이란 소나 돼지 따위의 가축을 도살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며, 의적 임꺽정은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 민심을 대변하는 의로운 사람, 즉 의적으로 추앙받아 오늘날까지도 무수히 많은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데,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임꺽정을 가리켜 홍길동, 장길산과 더불어 '조선의 3대 도둑'이라고까지 평했습니다.
명종실록에 기록된 구절 중 '임꺽정 무리가 도둑이 된 것은 왕이 정치를 잘못한 때문이지, 그들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라는 글귀가 있는 것만 보아도, 임꺽정이 살던 시대인 명종 때는 백성들이 굶주리고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559년, 조선 명종 때 윤원형 일파와 이량 일파의 세력으로 온 나라가 눌려 있을 때, 구월산에 본거지를 둔 임꺽정과 그 일당은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의 관아를 습격하여 곡식을 털어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임꺽정을 의적(의로운 일을 하는 도적)이라고 불렀으며, 임꺽정을 백성들뿐 아니라 지방의 벼슬아치들까지도 숨겨 주거나 달아나도록 도와 주어 관군을 동원해도 임꺽정 일당을 잡지 못하였고, 도리어 조정에서 파견한 선전관이 잡혀 죽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그리하여 임꺽정 무리는 버젓히 개성에 나타나고, 1560년에는 한성에까지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1560년 8월, 관원들은 마침내 임꺽정의 아내를 체포하여 관청의 노비로 삼았습니다.
그래도 임꺽정 무리는 봉산에 소굴을 두고 평안도와 강원도 곳곳에 나타나 재물을 털어 갔고, 나중에는 한성에도 근거지를 마련했습니다. 조정에서는 더욱 더 많은 군사를 풀어 그들을 체포하려고 했습니다.
그 해 12월에 임꺽정의 참모인 서림을 체포한 결과 일당이 장수원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조정에서 군사 500명을 보냈으나 도리어 패하고 군마를 빼았겼습니다.
그러자 관군은 본격적인 소탕 작전을 폈고, 황해도 순경사 이사증이 임꺽정을 잡았다는 보고를 하였는데, 그가 잡은 사람은 임꺽정이 아니라 그의 형인 '가도치'였습니다.
황해·경기·평안·강원·함경 5도의 군졸이 임꺽정을 체포하려 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잡고 보면 가짜 임꺽정이었으며, 1561년 10월에는 해주의 백성 집 30호가 임꺽정 무리에 의해 불타 버렸습니다.
모든 관청은 업무를 중단하고 임꺽정 체포에만 신경썼으며, 5도의 전시장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1562년 1월, 군관 곽순수와 홍언성이 임꺽정을 체포했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진짜 임꺽정이 붙잡혔던 것입니다.
임꺽정은 체포령이 내려진지 3년만에 붙잡혔으며, 15일 뒤에 처형을 당했습니다. 아무튼 임꺽정 때문에 명종대 3년 동안은 아무런 정치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임꺽정의 등장 이외에도 명종대에는 '을묘왜변'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졌었습니다.
을묘왜변이란 1555년 전라도 강진과 진도 일대에 왜구가 침입하여 약탈과 노략질을 일삼은 사건으로, 왜구들은 선박 70척을 앞세워 전라도 남해안 지역의 성을 포위하고 장흥, 강진, 영암 일대를 돌아다니며, 노략질과 약탈을 자행하였습니다.
이에 조선 조정은 토벌대를 보내 마침내 왜구를 몰아냈지만, 이로 인해 조선과 일본의 사이가 나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상으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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